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의 소식이 봄 꽃에 실려 전해오고, 이때 쯤 남쪽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필자의 고향은 남쪽나라 "진해"다.
이제 봄 소식을 찾아 고향 길을 가보자.

3월이 다 가기전 그곳에는 봄의 향연이 시작된다. 바로 "벚꽃 축제"가 그것이다.
겨울을 해풍을 맞으며 묵묵히 보낸 벚나무에 진해만의 따스한 봄바람이 제일 먼저
인사하는 것이 벚꽃이다. 마진(馬鎭)터널을 지나 파크랜드로 들어가면 그 유명한
드라마 "로망스(2002년)"의 촬영지 "여좌천"이 나타난다.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바뀌어 개울물도 깨끗하고 벚꽃 속을 연인과 거닐면 "김하늘(김채원)"과
"김재원(최관우)"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만약 부산에서 들어오면 "경화역"과
세화여고 사이의 수백m길이 꽃길로 화사하게 자태를 뽐낸다. 벚꽃의 화려함을
마음껏 맛보려면 "장복산공원"입구에서 벗꽃터널을 걸어들어가면 된다.
잠시 혼잡한 도심을 잊고 꽃의 나라 속에서 꽃꿈을 꾸게 된다.

필자는 어린 시절 양식장 잔디밭에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늘 아련하다.
지금도 군항제기간에는 개방한단다. 작은 호수옆 벚꽃숲을 걸으면서 가끔 잔디밭에
딩군다면 내가 꽃이 된듯한 상상을 하게될 것이다.

남쪽의 내 고향 진해에는 모두 낮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바다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집에서도 진해만을 볼 수 있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작은 섬들이 마치 쟁반 위의
풀빵 같았던 기억이 새롭다. 진해에는 아직도 변화보다는 옛것이 훨씬 더 많다.
애석하게도 차츰 귀한 추억거리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지만 역시 그 곳만큼 언제
가봐도 그 옛날의 추억을 바로 되새김하기에 쉬운 곳도 흔치 않으리라.

"흑백다방"은 참 오래 된 다방이었다. 필자의 중학시절(1965~1968)에 벌써 10년도
더 된 곳이었고 바로 최근(2007년)까지도 아름다운 클래식과 그림이 어울려졌던
진해의 예술과 혼의 샘, 고향의 참, 오리지널 고향이었다. 이북 함경도에서 내려온
故유화백이 처음 연 이 다방은 "중원로타리"의 명소였고 어린 시절 이 곳을 지나며
M학원에서 영어도 배우고 지금은 러시아식건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진해우체국'에
들러 편지도 부쳤다. 원래 "黑白"은 유화백의 따님 유피아니스트의 회고에 의하면
"까치"를 의미하고 "이곳에 오는 모든 이를 반갑게 모신다"는 뜻이란다. 그래서 이곳을
드나들던 문인예술생들에겐 ..."나는 그 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 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 였던 흑백다방이여/..."라고 싯귀를 남긴 J시인처럼 많은 예인(藝人)들의 안방과도 같았다.

진해는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天惠)의 군항지이다. 마치 병풍처럼 장복산이 남쪽
바다마을을 감싸고 있다. 뒤를 돌아다 보면 지금 당장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무섭게도
가까이 서있는 이 산은 그래서 필자가 어렸을 적 밤에 길거리를 다니기가 두려웠던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큰 망토를 걸친 요귀 같이 늘 우뚝 내 뒤에 서있는 그런 느낌을 가졌다.
그러나 동쪽을 올려다 보면 "엄마 젖 꼭지"같이 볼록 솟은 "시루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는 나에게는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새벽에는 뿌옇게 나를 내려다 보았고 달밤에도 외롭게 나를
지켜 주었다. 아주 먼 곳에서 늘 나의 수호신처럼 나를 향해 이렇게 나즈막히 소곤거렸다.
"열심히 해! 잘해야 되! 내가 지켜볼께..."

지금은 천국계단이라고 지그재그의 나무계단이 시루봉까지 놓여있고, 이 곳에서
내려다 보는 鎭海灣은 꿈같이 펼쳐져 보인다. 주위에는 곰메(熊山)과 불모산이 있고
절들도 보인다. 그래서 진해는 벚꽃도 있고 바다도 있지만 山도 있는 작은 自然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섬, 그리고 꽃...이것이 진해다. 그래서 "김달진"시인은 필자의 모교의
노래를 이렇게 지었다...."진해양 트인 가슴 빛나 뛰 놀고/장복산 푸른 정기 굽이쳐 흘러..."

만약 이 남쪽의 도시에서 山行을 고집한다면 "진해드림로드"를 권한다. 편백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長福山 길을 한나절 서쪽에서 동으로 가다보면 이렇게 산세가 부드럽고 바닷내음이
코를 즐겁게 하며 푸른 남해의 바다가 두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산행코스가 한국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것이다.

바다를 경험하고 싶다면 熊川과 수치를 찾으면 될 것이다. 웅(곰)천(마을)은 옛부터
많은 古史(事)까지 갖고 있다. 최치원의 발자취도 있고 이성계의 체취도 느낄 수 있으며
귀가 솔깃할 전설들도 이곳 웅천에서는 가능하다.

흔히 진해를 왜색이 짙은 도시라고 한다. 이말은 역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우선 일본국화라는 벚꽃이 비록 진해에 많지만 순수한 토종, "제주왕벚꽃"이란다.
그리고 왜색은 원래 서기 500년경 가락국이 멸망하면서 이곳 경상도의 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어 사실 일본 왜색의 본거지는 이 남쪽마을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고향인 셈이다.
일본어의 발음, 억양이 경상도 말과 매우 흡사한 것도 다 그런 까닭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때이고 이 봄, 남쪽마을로 여행을 다녀오면 내 몸은 묵은 때를
벗고 재충전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지난 겨울 피로와 스트레스로 체력이
탕진되었다면 하루나 이틀의 남쪽바다 여행으로 체력보강을 할 것을 권한다. 힘들다고 그냥
집에서 "방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눈과 코, 귀..오감을 신선한 봄과 바다의 색과
내음으로 즐겁게 한다면 지쳐있던 신체리듬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며 마치 귀한 보약
한 꾸러미를 먹은 것 이상의 효험을 볼거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