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미인(美人)은 타고나야 하는 "자연미인(natural beauty)"이었다.
그래서 요즈음처럼 흔하지는 않았고, 한 마을에서 얼굴이 예쁘다고 소문나면
이웃 마을까지 건너와서 구경하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 압구정에
가면 "사람半 美人半", 흔해 빠진 게 미인들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유럽에서는 18세 미만은 성형을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인데,
미성년자의 얼굴에 칼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한 일이고
벌써 입법화되었어야 할 내용이다.

원래 미용성형은 얼굴의 화상이나 선천성기형(대표적으로 "언챙이"라고 부르는 "구순열상"),
또는 심한 흉터나 좌우불균형과 같이 혐오스런 얼굴에 대한 성형수술이 주류를 이루었다.
기껏 미용성형이 있었다면 눈꺼풀이 심하게 부어서 보기 흉한 경우나 눈이 너무 작거나
사나워 보기 민망한 경우에 "쌍꺼풀"수술을 하거나 코가 납작하게 주저 앉아 추하게 보이는
경우에 코를 올려주는 "융비술"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그러던 성형수술이 이제는 연예인은 물론이고 일반 여성의 절반이상이 한번쯤은 하는
예사수술로 보편화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제일 먼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행사처럼 되었다.

얼굴성형은 이제 갸름한 턱과 쌍꺼풀, 우뚝 선 콧날은 기본이고, 튀어나온 광대뼈를
주저앉히고 심지어는 입술의 크기와 모양에 이르기 까지 입맛대로 고치는, 그야말로
얼굴을 통채로 개조(remodeling,or reform)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 집안에서도 한두달 자리를 비운 아빠가 성형한 딸을 딸친구로 오해할 정도로
전혀 딴 얼굴로 뜯어고치는 단계까지 다다랐단다.

그런데 이런 성형열풍은 많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문제점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우선 너도나도 지나치게 서구화된 성형미인으로 둔갑하다보니 전통적인 한국적 미(美)에
대한 경시적 태도가 알게모르게 이런 사회적기류 저변에 깔린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성형수술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이 사교육비에다 추가되어 딸가진 부모들의 경제사정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는것이 또 하나이며, 이전에는 성형미인이 희소하여 귀한 수술로 대접을
받았으나 이제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빈티나고 뭔가 부족해 보이는 묘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만만찮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아름다움만큼 소중하고 튀어 보이는 것이 드물지 모르겠으나, 또 외모지상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성형미인이 대접받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과 같은
사회 분위기라고 하더라도, 나이들면 20대를 겨냥하여 그때에 맞도록 변모시킨 성형이 40~50대,
심지어는 60대에 가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비칠 지 참으로 염려되는 바가 크다.
얼굴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변모해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나이가 들면
그런 얼굴이 훨씬 어울릴 지도 모르는데, 5~60이 되어서도 20대의 성형한 형태를 그대로 보인다면
참으로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고 때에 따라서는 도리어 추하거나 미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성형은 어쩌면 20~30대에만 어울리는 수술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물론 50~60대의 여성들도
성형을 많이 한다. 처진 뺨을 당긴다거나 눈주위의 주름을  없앤다거나 축 처진 피부에 약물을
주입하여 피부를 팽팽하게 하는 등의 수술 말이다. 그러나 노년기에 하는 수술은 젊은 시절의
수술과는 그 내용적인 면에서 많이 다르다.

강남에는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의사들이 한둘이 모여서 "그룹프랙티스(group practice)"를
하는 것이 최근의 성형외과의 트랜드인데, 요 몇년 사이에는 종합병원처럼 규모를 크게해서
십수명의 의사들이 하루에도 수십건의 성형수술을 하는 병원까지 생겨나고 있고, 여기다 "의료개방"이나
"외국인의료"를 통한 외화수입 붐이 일어나 이제 한국의 성형수술은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성형은 얼굴의 아름다움을 누구나 다 쉽게 다다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는 기회의
균등의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거라고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차만별의 고유한 개성미 넘치는 얼굴은 점차 사라지고 이제 TV화면을 보면 누가누구인지
구별조차 어려운 비슷비슷한 전혀 개성미라고는 찾을래도 찾을 수 없는 오히려 성형미인이
아닌 사람이 드문 그런 지경에까지 이으른 느낌이다. 이러다간 강남 한 복판에서 자기 딸이나
애인을 찾기가 어려워 지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성형은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잃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다는 개념은 이제 사라졌다. 즉 자기얼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하여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란 누구인가?  약간 눈이 튀어나오고 입술도 처져있지만
그래도 웃을 때는 귀엽다고 옆집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문질러 주던 나의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비록 예뻐지긴 했으나 뭔가 귀여움이랄까, 좀 부족해도 나름대로 내 "개성미" 같은 것이 내 특징으로서의
"나"를 상실하고만 "내"가 아닌 누군지 잘 모르는 "좀더 서양인 같이, 인형처럼, 연예인처럼 되어버린,
주소가 불분명한 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나를 어떤 사람으로 스스로는
물론 남으로부터도 인식되도록 할 것인가...그만 헷갈리고 말지도 모른다. 좀더 미인에 가까워 졌다고해서
내가 과연 미인일 수는 없다는 열등의식을 송두리째 벗어날 수 있을것인가?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허공에 뜬 형체가 없는 "자아"로서 방황하기에 너무도 쉽다는 것이 이 성형이 안고있는 철학적인 문제다.

결국 성형은 나의 외모상의 불이익으로 작용하던 것의 제거, 그것을 통해 사회적으로 한계단 오른다는
긍정적인 면을 그냥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그 가치를 매기면 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결코 성형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거라는 지나친 희망은 금물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하룻밤 자고 나면 내 인생이
바뀐다는 "신데렐라신드롬"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성형의 보람과 의미를 체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