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사람들은 병을 고쳐주는 의사들을 예사 사람들로 대하지 않는다.
내 병을 제대로 진단했는지, 처방내린 약이 잘 듣는 건지, 오진으로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형식적으로 대충대충 치료하는 것은 아닌지, 나를 돈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런지....병이 좀 심각하면 수만가지 걱정으로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명의(名醫)가 될려면 많이 아파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의사들 중에도 질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진료를 하는, 환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히려 의사들의 유병율(질병에 걸리는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듯이 치료하는 사람이 병에 걸려 봐야 환자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반드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환자처지를 잘 보살펴 주는
의사에게 환자는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 처럼 종합병원이 북새통을 이루는 나라도 드물다. 한 사람의 의사가 맡은
입원 환자수가 수십명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외과분야는 지원자가 없어 한명의
주치의가 병동 한층의 환자 전부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에 들어가랴, 회진 돌랴,
콜(call)에 응하랴, 세미나 준비하랴...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리 만큼 하루가 바쁘다.
식사는 고사하고 잠도 설치기 일쑤다. 그러니 환자가 병경과나 진단, 예후등을 물어보고
싶어도 도대체 담당의사를 만날 수가 없다. 고작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또 의사들은 페이퍼워크(Paper-work)이 만만찮아 틈만 나면 차트 기록하랴,
처방전을 끊어랴, 수술기록지 정리하랴...프로그래스 노트(progress note) 채우기에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환자는 의사들의 자상한 이야기를 원한다. 수술한 지 7일이 지났는데도
수술부위가 아픈 까닭은 무엇일까? 정상활동은 언제부터 가능할 까? 퇴원하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하나부터 열가지 궁금한 것 투성이인데 이 궁금증을 딱히 해소할 방법이
묘연하다. 그래서 환자들은 온갖 묘안을 짜서 주치의의 관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봉투를 건네 보기도 하고 친척을 동원하여 병원 앞에 기다렸다 퇴근하는
의사선생을 거의 납치하다시피 붙잡아 저녁을 삽네 하면서 요것조것 물어보기도 하고,
아예 어마어마한 "빽"을 동원하여 주치의를 약간 군기잡아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이 최선일 수는 없다.

필자는 늘 이런 주문을 한다. 우선 주치의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항상 호감을 가지고
진정성있게 대하라고. 의사도 인간인 이상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 편한 환자, 말 잘 듣고
의사지시에 호의적인 환자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의사도 그날 그날 컨디션에 따라 환자에게
말을 잘 거는 날도 있고 왠종일 입을 꾹 다무는 날도 있다. 환자는 우선 의사의 그날 컨디션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급한 질문이 아니라면 담당의사의 인상이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총각이라면 예쁜 처녀를 앞세워 질문하는 것도 간혹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의사의 대학선배를 동원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쁜 의사라도
한가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 그 시간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은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병동간호사(좀 직위가 높은 간호사가 좋다)에게 살짝 물어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다.
세상사 모든 일에 다 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두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거창한 격언을 자주 사용한다. 의사를 못 만나 불평을 늘어놓는 환자에게 하는 말이다.

의사에게 환자의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특히 중병일수록 더 그렇다.
의사는 환자가 자기병치료에 대하여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 한다.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지,
별 의욕없이 될데로 되라는 식의 방임형인지, 아니면 간혹 보게되지만 의사치료에 적대감을
가지고 치료에 늘 불신하는 특이한 사람인지, 의사는 대부분의 경우 일단 담당환자 모두에게
이점을 궁금해 한다. 그래서 환자가 성공적으로 치료를 받기 위한 첫째 조건은 치료에 적극적이고
의사지시에 잘 순응할 자세가 되어있음을 담당의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의사의 치료계획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이 주사는 왜 놓는 지, 저약은 왜 먹는지,
이 시술은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관심도 가지고 성실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가끔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치료에 수반되는 약간의 고통등에 대해서도 사전에 의사나
간호사를 통해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지나치게 꼬치꼬치 묻는다던지 증상 하나하나 다
그 연유를 물어 주치의를 조기에 지치게 만드는 것은 금물이다. 간호사나 의사에게 경어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절대 의사나 간호사에게 위협을 주거나 강압적인 언행으로 강요하지말라.
한번 이 같은 행위를 하면 대부분의 의사는 멀리 도망가버리고 늘 방어자세로 당신을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해야지 겁을 먹거나 기피해서는
좋은 치료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는 치료하는 전문직업인이다. 이런 치료행위를 통해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래서 늘 환자를 조심하고, 환자가 자기를 꺼려하거나 싫어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쓴다.
의사주위에 환자가 있어야 의사는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들 중에 돈을 잘 버는
의사(성형외과,등)도 있고 고생은 하지만 궁핍하게 사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특히 외과나 산부인과).
그러나 의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하는 과정은 모두 동일하다. 수많은 교과서를 익히고 실습하고
면허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단지 진료과목상 그들의 경제여건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환자들은 이들 의사사이의 묘한 감정들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가난하다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면 그들은 상처를 입는다. 외과의사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돈은 잘 못 벌지만
사람생명을 직접 다룬다는 자부심 하나만은 대단한 의사들이다. 이들은 한국의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진정한 의사인 것이다. 이들에 대해 경의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좋은 치료, 나에게 필요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어딜가나 부지런히 나의 병을 관심과 궁금증으로
접근해주는 훌륭한 의사를 찾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느 대학 누가 명의라고 하더라, 라는 것
한가지 제목으로 내 병을 다 맡겨서는 별로다.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 없다고, 명의가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의료수준이 보편화 되어있는 경우에는 굳이 명의가 아니더라도 나를 더 많은 사랑과
이해심으로 보살피는 정성스런 의사를 만나는 것이 열배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격언을 명심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이 말은 환자치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