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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2 (10:08:21)
수정일
2022-01-25 (10: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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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원의 기억들....
필자는 1980년 봄부터 1985년 초까지 서울 명동 근처의 백병원에서 근무했으며 81년부터 외과에 적을 두었다.

당시의 백병원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외과전문병원 이었다.
1941년 고 백인제박사가 "백인제외과의원"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1946년 해방과 더불어
백박사가 정식 백병원을 창립했고 애석하게도 6.25전쟁때 백박사가 북한에 납북되어
그 조카인 백낙환박사가 백병원을 물려 받았고 1979년은 13층 신축 건물로 단장을 마친 직후 였다.

원래 백인제,백낙환은 평북 정주에 고향을 둔 이북출신으로 정주의 갑부 아들이었다.
백인제박사는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수재로 일제시대 마취기술을 습득하여
한국최고의 외과병원을 만들었는데 독일에서 2년간 배운 외과기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한국 최고의 외과의사 였다.

조카인 백낙환박사 역시 서울의대 출신으로 백부의 납북으로 어려워진 병원을 새로 세우고
80년대 한국 최고의 사립외과병원을 만든 뚝심의 의사요 사업가였다.

그 당시 백병원은 백낙환박사와 백인제박사의 아들 백낙조박사(이분은 독일에서 의사자격을 획득)의
공동운영체제 였다. 원래 백인제씨는 엄청난 재력가여서 백병원은 항상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뎌 냈던 것 같다.

창비(창작과 비평)를 처음 세운 백낙청씨도 이 집안 사람이다.
백낙환씨의 계모의 장남이니 배다른 동생인 셈이다.
백낙청도 서울대 다니면서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백씨 집안이 원래 수재와 재력으로 유명했다.
백낙환과 백낙청의 아버지인 백붕제(백인제의 동생) 역시 일제시대 행정고시,사법고시 양과에 패스한
인재이고 경북군위군수를 했고 변호사등으로 많은 돈을 모았단다.

우리 백병원의국원들은 해마다 신년이 되면 가회동 백원장 저택에서 신년하례식을 열었다.
이 99칸의 한옥은  이완용과 관련된 집으로 압록강 흑송으로 집을 지었다 하여 유명한데,
백인제씨가 이 집을 샀고 납북되자 백낙환씨가 살게 된 것 같다.
가보면 집이 이렇게 넓고 잘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병원은 그 당시 병원식사가 참 맛있고 정갈하다고 소문 났었는데,
아마 그 식사 총 책임자가 백원장 모친인 최여사 인것으로 안다.
왜냐면 백낙청씨가 모친을 뵈러 가끔 병원이 왔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인자하고 다정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김두한의 야인시대를 보면 백병원이 자주 등장하는데 1941년에 백박사가 인수하여
백외과의원으로 불렀으니 얼추 비슷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80년대는 백병원,순천향병원,고려병원등이 군웅할거로 사립대학병원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슈바이쳐로 불렸던 장기려박사도 가끔 백병원에 들렸었는데,
그 분은 부산에서 병원을 세워 사설 건강보험을 창시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원래 내과를 지원했으나 낙방하여 다들 꺼리던 일반외과를 하게 되었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에는 의국원들 수도 10여명에다 스탭까지 합하면 15명이 넘었고
간호사들까지 더하면 30여명에 달하는 대가족이었다.
아침에 백원장이 진두지위하는 회진때는 군대 사령관의 사열때보다 더 위풍당당하였다.
입원환자 수도 60여명이 넘고 매일 수술 건수도 10수건에 달했으니 그 기세는
오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백병원은 수술만 잘 한 것이 아니고 백인제때부터 마취 잘 하기로 소문난 병원 이었다.
사실 전신마취가 제대로 되어야 수술이 순탄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백병원 마취과도 전문의가 여러명이었고 5년간 근무하면서 마취로 인해 수술이 중단되거나
포기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또 한가지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당시 백병원의 간호사들의 수준이 보통이상 이었다는 것이다.
실력은 물론 체력과 심지어는 미모까지 갖추었으니 전국 최고의 간호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간호감독 시스템으로 수시로 병원 곳곳의 문제점을 찾고 매일 보고하고 간호사 근무는 3교대로
원활하게 돌아갔으며 전국 각 간호대의 우수한 인력들이 지원하던 병원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보면 의사와 간호사의 결혼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우리 외과 의국에도 여러명이 같은 병원의 직장동료들과 가정을 이루었다.

수술하면 수술, 간호하면 간호,병원시설하면 시설, 병원식사하면 식사...
그 하나도 험잡을 것이 없던 젼국제1류의 병원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런 자부심 속에서 수많은 수술과 진료에 참여했고 그래서 백병원에서의 5년간의 기억은
참으로 긍정적이고 보람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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