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ITEMAP | ADMIN
 
related
column
 

작성자
작성일
2021-12-22 (10:08:21)
수정일
2024-01-14 (18:15:34)
글제목
백병원의 기억들....
필자는 1980년 봄부터 1985년 초까지 서울 명동 근처의 백병원에서 근무했으며 81년부터 외과에 적을 두었다.

당시의 백병원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외과전문병원 이었다.
일제강점기때 서울의대 외과  주임교수 고 백인제박사가 "백인제외과의원"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1946년 해방과  더불어
백박사가 정식 백병원을 창립했고 애석하게도 6.25전쟁때 백박사가 북한에 납북되어
그 조카인 백낙환박사가 백병원을 물려 받았고 1979년은 13층 신축 건물로 단장을 마친 직후 였다.

원래 백인제,백낙환은 평북 정주에 고향을 둔 이북출신으로 정주의 갑부 아들이었다.
백인제박사는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수재로 일제시대 마취기술을 습득하여
한국최고의 외과병원을 만들었는데 독일에서 2년간 배운 외과기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한국 최고의 외과의사 였고 초대 외과학회 이사장 및 초대 서울시의사회장을 역임하셨다.

조카인 백낙환박사 역시 서울의대 출신으로 백부의 납북으로 어려워진 병원을 새로 세우고
80년대 한국 최고의 사립외과병원을 만든 뚝심의 의사요 사업가였다.

그 당시 백병원은 백낙환박사와 백인제박사의 아들 백낙조박사(이분은 독일에서 의사자격을 획득)의
공동운영체제 였다. 원래 백인제씨는 엄청난 재력가여서 백병원은 항상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뎌 냈던 것 같다.

창비(창작과 비평)를 처음 세운 백낙청씨도 이 집안 사람이다.
백낙환씨의 계모의 장남이니 배다른 동생인 셈이다.
백낙청도 서울대 다니면서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백씨 집안이 원래 수재와 재력으로 유명했다.
백낙환과 백낙청의 아버지인 백붕제(백인제의 동생) 역시 일제시대 행정고시,사법고시 양과에 패스한
인재이고 경북군위군수를 했고 변호사등으로 많은 돈을 모았단다.

우리 백병원의국원들은 해마다 신년이 되면 북촌 가회동 백원장 저택에서 신년하례식에 참석했다.
이 99칸의 한옥은  이완용과 관련된 집으로 압록강 흑송으로 집을 지었다 하여 유명한데,
백인제씨가 이 집을 샀고 납북되자 부인인 최경진여사가 소유하여 해마다 백병원외과의국 신년하례식이 여기서 열렸다.
가보면 900평이 넘는 한옥집이 이렇게 넓고 잘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조선의 돈을 줘락펴락했던 인물이 공들여 지은 한옥이니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옥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백병원은 그 당시 구내 병원식사가 참 맛있고 정갈하다고 소문 났었는데,
아마 그 식사 총 책임자가 백원장 설립자 백인제박사의 부인  최여사 인것으로 안다.
참으로 인자하고 자상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면 백병원이 자주 등장하는데
1941년에 백박사가 일본의사로부터 인수하여 백외과의원으로 불렀으니
드라마 속의 병원이 이 백병원이  얼추 맞다고 보여진다.

80년대는 백병원,순천향병원,고려병원등이 군웅할거하던 사립대학병원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슈바이쳐로 불렸던 장기려박사도 가끔 백병원에 들렸었는데,
그 분은 부산에서 병원을 세워 사설 건강보험을 창시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원래 내과를 지원했으나 내과의국에서 이미 다른 인턴을 내정한 탓으로
내과수련은 물건너 가고 결국 다들 기피하던 일반외과 의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에는 의국원들 수도 10여명에다 스탭까지 합하면 15명이 넘었고
간호사들까지 더하면 30여명에 달하는 대가족이었다.
한번 회식이라도 나가면 일개 중소기업에 비견할 정도로 대단했다.
아침에 백원장이 진두지휘하는 회진때는 군대 사령관의 사열때보다 더 위풍당당하였다.
입원환자 수도 60여명이 넘고 매일 수술 건수도 10수건에 달했으니
그 기세는 오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백병원은 수술만 잘 한 것이 아니고 백인제때부터 마취 잘 하기로 소문난 병원 이었다.
사실 전신마취가 제대로 되어야 수술이 순조롭게 이뤄진다.
그래서 백병원 마취과도 전문의가 여러명이었고
5년간 근무하면서 마취때문에 수술을 중단되거나 포기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또 한가지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당시 백병원의 간호사들의 수준이 보통 이상 이었다는 것이다.
실력은 물론 체력과 심지어는 미모까지 갖추었으니 전국 최고의 간호사들이 모인 셈이다.
간호 관리감독이 철저하여 수시로 병원 곳곳의 문제점을 찾고 매일 원장실로 보고되고
간호사 근무는 3교대로 원활하게 돌아갔으며
백병원은 전국 각 간호대의 우수한 인재들이 지원하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보면 의사와 간호사가 짝을 맺는 결혼도 적잖게 있었다.
우리 외과 의국에도 여러명이 같은 병원의 직장동료들과 가정을 이루었으니
어찌보면 선남선녀들의 화복한 직장이었다고나 할까....

수술하면 수술, 간호하면 간호,병원시설하면 시설, 병원식사하면 식사...
그 하나도 험잡을 것이 없던 젼국 최고의 병원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런 자부심 속에서 수많은 수술과 진료에 참여했고
그래서 백병원에서의 5년간의 기억은
참으로 긍정적이고 보람찬 것이었다.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게시물:199  쪽번호:1/14  오늘:3457  전체:3185220 RSS 피드 2.0(XML)

199

답글영국 이야기....

관리자

2024.02.15

157

198

답글"너의 의미"....

관리자

2024.02.11

188

197

답글도사 이야기....

관리자

2024.02.07

214

194

답글장수철학이란...

관리자

2024.01.11

487

192

답글가족 이야기

관리자

2023.12.16

551

191

답글족보이야기....

관리자

2023.06.17

1345

185

답글보석을 찾아서....

관리자

2022.11.13

1179

홈으로 다음페이지 리스트
이름 제목 내용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