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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6 (18:12:25)
수정일
2023-03-01 (16: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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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전설을 되새기며....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경남 진해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본이 김해김씨 이다보니 김해와 가까운 창원의 진해에서 부모님들이 고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김해에서 열리는 김해김씨의 종친회에 어르신들이 참가하는 것을 보았고
김씨의 시조이신 김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6-25 전쟁으로 집안의 그 많던 땅을 잃었다고 한탄해하는 어른들의 이야기와
아버지 형제 중 키가 크고 훈남이시며 착하셨던 큰아버지께서 전쟁 중 전사하여 아버지가 자주 슬퍼하던 모습도 기억한다.
그분의 훈장이 2022년에야 화랑무공훈장으로 나에게 주어지긴 했으나....

진해 우리 집은 장복산 아래에 있었는데 그 오른쪽을 올려다 보면 시루봉(곰메바위)이 우뚝 서 있었고
좌측산 꼭대기에는 전설로만 들었던 덕주바위가 늘 눈에 들어왔다.
동네 어르신들은 덕주아재가 하도 걸음이 빨라 방금 우리집에 있었는데
금새 바위에 촛불이 커졌다고 하는 말씀을 여러번 듣곤 했다.
우리 동네에도 신출귀몰하고 축지법을 쓰는 도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어릴적 나의 동화적인 호기심을 길러 주었다.

동쪽에 아침 햇살에 볼록 솓아있는 시루봉을 아침 인사처럼 쳐다보는 것이 어릴적 습관 중 하나였다.
진해에는 해군사관학교,해병대,UDT가 있어 신병들은 극기훈련으로 천자봉까지 구보나 굴러서 가는
전통이 있었다. 시루봉에는 언제부터인가 ":해병혼"이라는 글씨가 보인 것도 그런 연유이었을 것이다.
겨울이면 경화동 앞 바닷가에는 해병대원들이 얼음물 깨고 수영하는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봄이면 진해에는 군항제가 열려 전국잔치가 된다.
올해도 3~4월에 벚꽃이 개화해 있을때에 열릴 것이다.
해군군악대의 팡파레와 제황산 아래 도심을 행진할때 시민들이 환성을 보낼 것이다.

천자봉 넘어에는 성주사 절이 있어 봄가을 소풍을 자주 갔었다.
산은 웅산으로 연결되어 "웅"(곰)이라는 마을과 개울,저수지가 있어서
오늘날 진해는 무려 20만의 인구를 가진 제법 큰 도시가 되었다.
이 천자봉에도 전설이 있으니 명나라 태조(주원장)와 관련된 전설이다.
주원장이 워낙 잔혹하여 거론하기가 좀 망설여지지만 진해에는
"주"씨들이 제법 살았던 같다. 내 친구들 중에도 주씨성을 가진 애들이 여럿 있었고
중학교때 국어선생님도 주씨여서 이분은 나의 큰 외삼촌과 친구였고 나만 보면 외삼촌 이야기를 자주 했다.
불행이도 외삼촌은 고려대 재학 중에 큰 병을 앓아 요절하셨다.

진해는 산에 오르면 앞바다가 그림처럼 작은 섬들이 둥둥 떠있는 한폭의 그림을 선사해준다.
뒤에는 장복산과 웅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서 겨울에는 따뜻하고 봄에는 산나물과 그 화려한 벚꽃들로 잔치를 벌인다.
진해 벚꽃은 마산진해 국도에서부터 진해 시가지,경화역,여좌천,해군사관학교...수만개의 나무들로 참으로 화려하다.

중학교때 담임 선생님이 아련한 벚꽃전설을 들려주었다.
예쁜 처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벚꽃 밑을 거닐다가 마침 기침을 하여
가래가 튀어나왔는데 우연히 남자가 그 가래색깔을 보니 분홍빛이어서....
남자는 이 여인이 각혈을 하는 걸로 오해하여 그만 사랑의 줄이 끊어졌다는...
슬픈 벚꽃길 전설을 나는 지금도 아련히 되뇌이곤 한다.
사실 이 분홍빛 색깔은 핏빛이 아니고 벚꽃이 반사된 색깔이었을 텐데....

진해만은 물이 맑고 어류가 풍부하여 어부들이 살기에 좋은 어촌이었다.
해군기지가 들어와 군항도시로 진해 이미지가 바뀌긴 했지만....
통영 못지않게 진해 역시 제3의 한국의 나폴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도시가 진해다.

아침이면 해뜨는 곳에 우뚝 선 곰메바위를 보며 내 어릴적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을 되뇌이고....
뒷산에는 축지법을 쓴다는 덕주아재의 전설을 가슴에 담고....
언젠가 아재가 그토록 싫어했던 진해의 옛모습을 지워버리는 아파트촌화 되어 간 진해의 슬픔을 같이 느끼고...
동네 옆 중초동(조촌마을?)이 재개발로 사라지던 그때의 가슴아픔도 다시 되새기고...
뒷산 중턱의 내가 잠시 기숙했던 절이 산사태로 사라졌다는 또 다른 슬픔을 느껴보고...
그래도 진해는 전설이 살아있고 애잔한 고향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그런
내 소년시대의 고향으로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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