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8올림픽이 개최되기 한해 전, 필자는
서울근교 S군단 의무실장으로 군의관생활을 하였다.
군의관의 계급은 전문의 출신일 경우 대위였으나
이곳에서의 직책은 중령이나 대령급에 버금갔다.
군단장의 주치의기도 하고 예하 부대의 모든 군의료시스템의
책임자 역할도 하였기 때문이다. 군단의 살림은 참모장(준장)이
도맡아서 했다. 당시 참모장은 포병출신의 Y준장이었는데,
꼼꼼하기로 소문난 군인이었다. 매사를 포 쏘듯이 이리저리
눈금재듯 철저하였다. 그래서 참모 (대령급)들은 틈만 나면
참모장을 유연하게 만들려고 회식도 자주열고 해서 Y준장은
업무와 회식으로 지쳐있을 정도였다.

하루는 의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참모장실에서 급히 전갈이 왔다.
아무래도 참모장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비틀거리고 얼굴표정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참모장실로 달려갔다.
참모장은 막 회의실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걷는 모습이
뒤뚱거리고 늘 봐왔던 참모장의 얼굴모습이 아니었다.
큰일났구나 중풍(뇌졸중)으로 반신마비가 온거구나, 나는 직감하고,
짧은 시간 안에 뇌회전을 재빠르게 굴려보았다.
일단 여기서 자리를 피하자, 지금 저런 모습을 다른 군인들에게
보이면 참모장은 치명타(군대는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를 입게된다.
나는 즉시 참모장을 차에 태워 내가 근무했던 서울 모대학병원으로
긴급후송하였다. 일체 타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참모장실 병사들에게도 철저히 입단속을 시켰다.
역시 Brain CT(뇌혈관특수촬영) 결과, 뇌경색이었다.
바로 입원시켜 막힌 혈관을 뚫도록 하고는 나는 부대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참모장(군단의 어머니와 같은)이 갑자기 사라지자,
군단장(3성장군)은 물론 기무사대장, 헌병대장..모두 내게 참모장의
거취에 대하여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는 한번도 참모장의 와병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휴가갔다고만 귀뜸해 주었다.
참모장은 1개월간의 치료후 80%이상 회복하여 부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제대하였고 그 참모장은
다소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단히 노력하여 사단장, 3성장군..등등
군인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까지 승승장구하였다.

그런데, 내가 개업을 하고 있던 어느날, 그 참모장이 군복을 입고
우리병원에 나타난 것이었다. 계급은 소장, 그러니까 사단장으로서
당시 내가 소속된 예비군부대 지휘관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척 반가웠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의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을 추억같이 되돌아 보았다. 그 해 나는 참모장(그러니까 사단장)의
도움을 받았고 감사하다는 뜻의 보은적인 고마운 도움이라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군인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것은 참으로 보람스런 일이다.

또 하루는 사격훈련 중 자신의 발등에 M1소총으로 오발하여 발에서
출혈이 심한 사병을 후송했던 적이 있다. 부대에서 수도통합병원까지는
2~3시간이 소요되는데 아무리 지혈해도 피는 계속 뚝뚝 떨어졌다.
나는 떨어지는 피의 속도와 수통까지의 거리, 그리고 이 사병의 몸에
남아있을 피의 양을 계산, 잘하면 살리겠다고 생각, 수통으로 차분히
후송시켰는데, 다행히 나중에 무사하였다. 그리고 제부도(서해의 섬)에서
급성맹장염환자가 발생, 마침 제부도와 육지사이의 바닷길에 바닷물이
차들어오는 급박한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응급수술을 할 수 있도록
후송한 경우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앰블런스가 구르거나 정면충돌
차사고로 허리와 목에 다소 심한 상처를 입기도 하였다.
군대는 일생에 한번 갔다 오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