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5년간 강남구에서 개업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였는데,
유독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 우리 강남구의사회는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돈독히하고 배운 의료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무료진료를 해 왔다.
가깝게는 강남구 안에서 멀리는 서울인근이나 강원도 강릉까지 가서
우리 의사들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무료봉사를 해왔다.

지금 이이야기는 강남구 내의 봉사활동에 관한 것이다.
강남구는 대체로 생활환경이 풍족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만 변두리(일원동이나
세곡동 등지)에는 아직도 빈곤한 계층들이 많고 이들에게는 무료진료가 적잖은
도움이 된다. 우리 의사회는 세곡동에 위치한 비닐천막촌환자들을 매월 진료했었다.
이들은 정신박약, 자폐증, 선천성장애등으로 가정과 사회로 부터 격리된 환자들인데,
모종교단체에서 이들을 천막집을 만들어 돌보면서 의료지원은 가까운 S대학병원이나
강남구의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아왔었다.

천막도 임시가건물이어서 늘 구청으로부터 철거요구를 받는, 쫓기는 상태였다.
천막안은 일반 가정집과는 달리 가장 형편없는 시설로 그저 비바람만 막는 정도였다.
진료차 가보면, 자폐증환자들은 늘상 온몸에 상처 투성이였다. 스스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마를 벽에다 쿵쿵 박기도 하고, 기본적인 대소변을 가리기도 힘든 환자들이 있는 가 하면,
온갖 피부병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사실 우리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소독하고
약 몇가지 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들의 생활은 솔직히 말하면 인간과 짐승의 중간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찌보면 짐승보다 못한 삶이 그들의 일상생활이었다.
거의 본능적인 수준에서 먹고, 자고, 싸는 그런 수준이라고 보면 될 정도였다. 나는 이들의 생활을
보고 난 뒤 부터 인간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꼈다.
집안의 개나 고양이 보다 못한 그들의 생활을 처음 본 그날 나는 엄청 당황하고 깊은 혼란 속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조차 없었다. 인간과 짐승의 중간적인 비참한 생활을 하는, 차라리 짐승보다
못한 그들의 모습에, 과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 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천사였다. 해맑은 얼굴 모습에는 자신이 처한 처지를 전혀 모르는 듯,
우리가 도착하면 반겨주고 다가와서 인사하였다. 입은 해 벌리고 있고 배꼽은 내놓고 일어나지
못해 땅바닥을 기어다니지만, 눈만은 초롱초롱하고 입은 늘 방긋 웃고 있었다.
눈꼽 만큼도 적개심도, 원망도 없이 그저 좋아만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전형적인
저능아의 모습이지만,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고 믿었다.
육신은 걸레처럼 허우적대지만 영혼만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을 치료하러 그곳에 가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조그만 것에 비해
훨씬 크고 많은 선물을 받아 온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있었다. 도심에서 찌든
우리들의 영혼이 그들을 통해 순화되고 정화되는 것을 우리는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탐내지도 가지려하지도 않고 무념무상으로 하루를 욕심없이 사는 깨끗한
하느님의 자식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느님의 영혼이 그들의 얼굴에 투영되어 나옴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 모든 살아있는 것은 삶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들의 존재이유는, 바로 감사의 마음,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마음을 우리 탐욕에
가득찬 인간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하느님이 지구상에 보낸 참으로 고마운 하느님의 선물,
특별선물이라는 것이 그 존재이유인 것이리라.

그 천막은 그로부터 몇년 뒤 수원 어딘가로 깨끗한 건물을 지어 이사갔다. 그 후로도 이따금씩
그 쪽에서 연락이 닿곤 했으나 우리는 더 이상 그 불쌍한 천사들을 만나는 기회는 없었다.
그만큼, 우리들의 생활도 각박해졌다는 이야기다. 천사들의, 해맑은 미소들을 그리워하며...
지난 시절 그들을 진료봉사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