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5년 부터 1988년 초까지 S군단에서 군의관시절을 보냈다.
첫 일년은 특공대대대군의관으로, 나머지 2년간은 군단의무실장
직책으로 군생활을 하였다.

당시는 전두환대통령시절이어서 군대내의 군기가 만만찮은 시기였다.
의무실에는 필자(의무실장)와 일반 군의관 1명, 치과군의관 1명, 선임하사 1명,
그리고 의무병 3명, 도합7명이 근무하였다. 우리 의무실은 헌병대를 뒤로하고
연병장을 앞으로 하며 100여평 남짓한 크기의 낡은 단층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평일에는 오전, 오후 진료를 보고 상태가 중하거나 정밀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주 1회 수도통합병원에 외진을 가는 정도였다. 그리고 군단장이나 부군단장의
호출이 있으면 가서 진료상담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의무실내에는 간단한 수술실도 있었고 10여명 정도의 환자를 입원 시킬 수 있는
조촐한 입원실도 있었다. 야간에는 의무병들이 교대로 당직을 서며 의무실을 지켰다.
그런데 의무병들 사이에 약간의 알력이 있어서 가끔 아침에 와보면 하급의무병의 얼굴이
부은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가차없이 폭력을 휘두른 상급의무병을 자대로 복귀시켰다.
스스로 충분한 반성을 할 때까지 의무실근무를 못하게 하였다. 필자는 무엇보다 군대내의
폭력사용을 엄하게 다루었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그 책임을 물었다. 훗날 그때 의무실에서
쫓겨난 의무병은 감정이 풀리지 않았는지 개업한 병원 가까이에 살면서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의무실내에서의 음주 역시 철저히 금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출근해보니
의무병(최xx)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의무실에 도착하면 나와서 "단결"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하였는데, 그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싶어서 의무실 주위를 돌아보니,
기가 찬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의무실 뒤에서 곯아 떨어져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인체에 무해한 소독용알코올을 마신 것이었다. 나는 급기야 부축해서 입원실에
눕히고 포도당주사를 놓고 혹시나 무슨 좋지않은 상태일 까봐 옆에서 지켜 봤으나 다행히 별탈없이
몇시간 뒤에 깨어났다. 나는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여, 전원을 연병장에 완전군장으로 집합시켰다.
그리고 나도 같이 연병장을 돌았다. 다들 헉헉거렸으나 모른체 하고 구보를 계속했다.
그 날 군단장실에 이 기묘한 완전군장구보를 무심코 보았던 군단장이 누구냐고 수행장교에게
물어본 모양이었다. 평소 나를 잘 알던 군단장은 의무실장이란 말에 껄껄 웃었다고 한다.

또 하루는 느닷없이 군단장이 들어닥쳐 의무실을 샅샅이 조사하고 갔는데, 실인즉 헌병대사건으로
실장인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군단장님이 의무실감사를 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을 나는 고생했다. (헌병대사건이란, 군형무소에 갖힌 병들의 구타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나는 구타때 볼 수 있는 흔적을 구타냐고 다그쳤던 군단장의 질문에 모기에게
물려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 사건.)

의무실 앞에는 밤나무가 있었고 뒤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였다. 그래서 봄철에는 갓 자란
파릇한 솔잎을 따다 솔차를 만들어 목들이 신통찮은 군신부와 군단장에게 드렸고 가을이면
밤을 따다 구어 먹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은 사비를 털어 삼겹살파티를 벌렸다.
지난 군대시절이 아련히 눈에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