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숫자들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4" 자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 "7" 자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필자도 아직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25" 라는 숫자에 대한 묘한
징크스(jinx)를 갖고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우선 의사의 입장에서 25 란 숫자가 의미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간(肝)은 평소에 간기능의 25% 만 제대로 작동하면
정상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간의 25% 만 남기고 간절제를
해도 생존한다고 한다. 거꾸로 몸의 중요기능, 혈압이나 혈당치,
빈혈수치 같은 것이 25%의 범위내에서는 거의 정상기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콩팥기능도 전체의 25%만 작동해도
신부전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인체는 무려 100-25=75% 의 여유분을 갖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게 인체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뇌같은 것은
25%가 작동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심장도 그렇다.

우리 사회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족을 봐도 그렇고 직장 속을 들여 봐도 그렇다.
회사내에 25%의 사원들이 요소요소에서 열심히 일하면
그 회사는 이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대개 2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 즉 일생에서 약 25년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볼 수 있다.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속에서도 비슷한 예가 나온다.
개미를 유심히 보니 전체 개미 중 25%정도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75%는 빈둥댄다는 것을 발견하고 임의로 열심히 일하는
놈들을 끄집어 내니 또 다시 새로이 25%가 열심히 일하더라는 것이다.

필자의 25 징크스는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와 25살 차이가 난다. 고등학교는 25 회이고, 내 큰 딸과 나는
25년 차이가 난다. 나는 개업 25주년을 채우면 새로운 25 라는 숫자를
위하여 전세계 25 개국을 다니며 여행을 하고 싶고 욕심같으면 은퇴후
25년을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또 열심히 일하여 25 억원을 벌기를
희망하고(좀 지나치지만), 어느날 내가 죽었을 때 25명의 조문객이
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생전에 공덕을 쌓기를 원한다.
또 새아파트에 들어 간다면 25층에 입주하고 싶고, 그 집에서 25번의
즐거운 파티를 열고 싶다. 욕심 같아서는 25명의 후손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죽고 싶고,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여 신발을 25켤레를 닳아
새로운 신발을 사고 싶기도 하다.

나는 평생에 의사로서 적어도 25명의 죽어가는 목숨을 내 손으로
반드시 살려놓고 싶고, 또 적어도 25 명의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을
깨우쳐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하도록 돕고
싶으며, 진심어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25명의 친구를 사귀고 싶다.

훌륭한 의사동료를 25명을 사귀어 그들과 보람있고 품격높은 교류를
즐기고 싶기도 하며, 나를 의사로서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25명의
환자가 우리 병원에 다녔으면 하는 소원도 있다. 적어도 25번의 기부를
하고 싶고, 가난하고 불쌍한 삶들을 위한 무료 진료도 25회 이상 하고
싶기도 하다. 좀 허황스런 꿈 같은 이야기지만, 언젠가 25일이 되면
그날은 길가다가 25번째 만나는 사람에게 25만원을 아무 조건없이,
그것도 25번 되풀이 하여 주머니 속에 쑤셔 넣어주고 싶다.

적어도 일년에 25번의 선행을 할 수만 있어도 나는 행복할 것 같다.
내가 앞으로 25년을 살기는 쉽지는 않지만 그게 허락이 된다면
지금보다 25배 더 가치있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래저래 나는 25라는 숫자를 나의 모든 행불행의 운명이라는 틀 속에
끼워 맞추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지금보다 25배 더 착하고, 25배 더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25분의 1만큼이라도 있었으면 더 할 나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