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의 병동은 바깥 사회의 축소판이고,
그래서 병동내에서는 인간사의 희노애락이 늘상 발생한다.

80년 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요구르트가 막 시중에서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는데,
유명한 요구르트회사의 회장이 갑자기 중환으로 병동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지만
뇌졸중에 걸리면 대개 신체의 반이 마비가 일어나 걷거나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고 회복도 그리 쉽지 않다.
Y회장님이 중풍으로 병동에 입원한 것이다.
원래 요구르트는 우유를 발효한 유제품으로 7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제조법을 도입, 힘겹게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받고있던 당시로는 오늘날 처럼 대중화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요구르트의 국산화엔 Y회장의 업적이 절대적이었다.
요구르트는 온도를 2도에서 10도 이하로 유지하지 않으면
유산균이 금방 죽기 때문에 일반 우유처럼 상점에서 보관하다
파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Y회장은 한국 최초의
"요구르트아줌마"라는 판매방식을 도입, 그 날 만든 요구르트를
직접 배달판매하기도 했다. 최근 이 회사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무려 13,500 여명의 요구르트 아줌마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마치 목화를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문익점처럼 Y회장이
요구르트원료를 국내에 반입하는 것 역시 007 첩보영화에서나
보는 철저한 보안유지가 요구된 모양이고, 당시 축산대교수로
있다 전격 사장으로 발탁된 Y씨의 기발하고 열성적인 노력으로
한국은 성공 못한다던 요구르트 생산을 보란듯이 해내었는데
결국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Y 회장은 입원을 해서도 부지런하고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 그 병동에는 착하고 예쁜 간호사들이 많았고 Y회장을
간호했던 K 간호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간호사였다.
한결같은 자세로 자신을 돌봐주던 착한 K 간호사를 눈여겨 보았을
Y 회장은 무슨 꿍꿍이 속이 있었던지 유독 K 간호사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같고 급기야는 Y 회장이 거의 정상으로 회복하고 퇴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Y 회장의 아들과 우리 병동의 K 간호사가
그만 부부로의 인연을 맺는 경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병동의 간호사와 회장 아들간의 결혼은 충분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이야기 꺼리가 됨은 자명하다. 늘 의사들에게
미소를 잊지 않고 의사지시(order)를 충실히 따르던 K 간호사는
그 후에도 두고두고 우리 11층 병동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K 간호사는 결혼과 동시에 퇴직을 했는데, 가끔 가족과 같은 병동식구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올 때는 늘 요구르트를 한 보따리 가지고 왔고
그 날은 당시로는 평소에 쉽게 마실 수 없던 요구르트를 실컷 먹는
행운도 같이하는 날이기도 했다.

얼마전 들은 소식으로는 Y 회장은 작고하시고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 Y 회장만큼 활발하고 화통하며 자신에 차서
치료에 임하는 환자를 본 기억이 별로 없고, 또 내 경험으로 K 간호사처럼
착하고 부지런하며 상냥한 간호사도 주위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결합은 아마 우리 병동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
하나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분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 지 궁금하다.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