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에 성공하는 의사들이 학창시절에 모두 우수한 학생들은 아니다.
오히려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융통성있고 요령있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개업성공의 비결이랄 수 있다.

환자들은 병원에 오기 전에 대부분 스스로 자기병에 대해 어느정도
예단을 하고 온다. 간이 나쁠 것이라던지, 허리디스크일 것이라던지, 하는
나름대로의 예진을 한다. 그래서 의사가 이것저것 묻고 진찰을 한다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질병을 예시하면 참 신통한 의사라고
호감을 갖는다. 만약 자신이 그동안 치료해왔던 방식을 험담이라도 하거나
아예 꾸짓거나 하면 그날은 이 의사와 마지막 조우를 하는 날이다.
열이면 열, 대개 딴 병원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왜 우리 병원에 왔을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환자가
만족할 것인가? 환자의 환심을 사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환자의 주머니사정을 잘 헤아려야 한다. 간단히 주사 한대를 맞으러 온
환자에게 피검사를 해라, 초음파검사를 해라,라고 하면 환자는 능력 밖의 요구에
그만 이 병원을 포기하고 만다. 그 환자에게 맞는, 그 환자의 경제사정에 가장
적합한 진료를 요령있게 하는 의사가 개업에 성공하는 의사라고 보면 대개 틀림없다.

필자도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의사다.
환자의 배운 정도, 가정환경, 직업, 경제력, 체질, 성격...등등 여러가지를
짧은 진료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파악하기 위해 온갖 재주를 다 부려본다.
그래서 상당히 성공하는 편이다. 그러나 도저히 환자의 취향이나 요구를
맞출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일이다. 60대 노파와 딸인가 하는 환자가 왔다. 팔이 다쳐서 왔는데
얼핏 봐도 골절이 의심되는 환자인데, 보호자의 말이 가관이다.
한의원에서 1주간 치료해 보고 차도가 없으면 정형외과에 가서 X-선도 찍고
치료 받으란다. 그래서 1주일이 다 되어 온 것이다. 이것은 필자에겐 인내의 한계를
벗어난다. 도저히 그런 요구에 응할 수 없다. 물론 X-ray촬영을 하고 비록 늦었지만
억지로라도 뼈를 맞추고 깁스를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당당히 자신들의 어처구니 없는 의료행태를 조금도 거리낌 없이
내 뱉는 태도에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X-선 만이라도 찍어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도로 잘난 한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받아라고 되받고 말았다.
뼈의 골절은 즉시 냉찜질과 골절을 맞추고 깁스를 해야 하고 1주일 정도 방치하면
모든 게 쉽지않고 자칫 나중에 치료하는 의사는 엉뚱하게 치료결과를 뒤집어 쓰는
불행을 맞기 쉽기 때문이다.

필자는 환자에게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혼을 내거나 호통을 치거나
하는 것은 아니나 잘못하고 있으면 사실대로 지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환자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들춰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자존심을 상해하기도 한다. 그런 의사가 고맙기 보다는 남의 약점을 노출시켜
아픈 마음을 더욱 다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잔소리 많은 의사를 사실 꺼려한다.

진료에 미치면, 진료에 몰두하다 보면, 가끔 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환자는 의사가 하는 말의 25%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다.
아무리 의사가 잘 설명해도 환자는 잘해야 25%정도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75%의 의사말을 곡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진료에 충실하고
환자의 병을 잘 낫게 하려는 욕심에 자꾸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환자의 세뇌를 유도한다.
환자는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듣는 셈이지만 그래도 의사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환자에게 늘 존대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편은 아니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늘 인자하게  미소짓고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자상한 의사라기 보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치료의 기본에
충실하도록 환자를 딱딱하게 교육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환자에게 큰 인기를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극히 소수의 환자로부터 구애를 받는
타입이라고 본다. 물론 필자의 진료내용을 무척 좋아하는 환자들도 있다.
대개 필자처럼 원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면 맞을 것이다.

필자는 2009년 1월 1일부터, 오늘 (9월10일)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가까이 병원을 지켜왔다. 초인적인 진료다.
그러나 필자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어찌보면 살짝 돈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병원이 좋아서 하루라도 병원에 오지 않으면 불안하기 까지 하니 일중독이라도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떤 환자라도 그들이
나를 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한 결코 나는 그들을 경솔하게 대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이다. 그것을 나는 매일 지킨다.
1년 365일을...나는 아마 진료매니아에 빠진 게 틀림없다.
언제 정신과진단을 받아야 할 것 같다.